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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do

외국에는 불효자가 없다. 본문

겨겨울

외국에는 불효자가 없다.

2024. 9. 5. 21:11

외국에는 불효가 없다. 엄밀히는 동아시아를 제외하면,

효도라는 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사전적으로는 존재한다.

영어로는 'Filial Piety'가 '자식 된 마음가짐'이라며 효도라 번역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를 효도에 대한 명확한 번역이라 보기도 힘들고,

또 실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아마 상당수는 이런 단어 자체를 모르고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왜 외국인은 효도를 모를까? 잠시 이를 말하기 전,

한국의 효도의 의미부터 살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효도는 무엇인가?

 

효도의 시작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신체는 부모로부터 받아 그 무엇도 함부로 하여선 아니 된다'라는 것이다.

효도의 끝은 '입신양명(立身揚名)'라는 '성공하여 이름을 날린다'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 '부모의 뜻에 따른다'라 하면 될 것 같다.

생명을 주신 은혜를 평생 갚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전통적 효도관은 자식을 부모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인의 불효는 무엇인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것,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고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부모의 뜻에 어긋나 실망감을 안기는 것'을 불효라 부른다.

 

하지만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아 실망감을 안기는 것이 왜 불효일까?

 

요즘은 이에 명확히 답을 하기 힘들다.

 

'불효'라는 단어가 나쁘다는 건 알지만,

의미적으로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자식의 삶이 부모에 종속되어야만 하고,

또 그래서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을 효도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우리는 부모의 뜻을 맹종하기보다

자신의 꿈을 가지고 노력하며 나아가는 것이 더 멋진 모습이라 생각한다.

또 그런 생각으로 자식들의 꿈을 응원하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효도나 불효, 그 내재된 의미에 대한 공감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뜻에 어긋난다 하여 이를 불효라 말하며 금기시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점점 보기 힘든 일이 되고 있다.

 

그러면 외국에 왜 효도가 또 불효자가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외국에는 불효자가 없을까?

 

외국 특히 서구권에서는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의 종속된 개체가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또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서 바라본다.

 

부모가 자식의 결정에 간섭하여 이를 통제하고 강압하는 일을 피하고,

오히려 그런 행위들을 폭력이나 학대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도, 물론 내심 실망감은 들겠지만,

이를 불효라는 금기의 시각에서 다루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도 점점 인식이 바뀌고 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언어적 습관이 사회적 인식을 따라가지 못해

습관적으로 "불효" 발언을 쏟아내며 갈등을 일으키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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