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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자아가 있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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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자아가 있을까?'란 질문에 대답을 구한다면 답은 '모른다'이다.
당장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나 이외 인간에게 자아는 있는가?'
심지어 자아의 존재는 물론이고,
자아의 정의조차 내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자아는 '나'뿐인데,
스스로가 스스로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은 물리적 영역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하드웨어 즉 신체이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자아의 형태를 물리적 현상과 연관시킬 수는 있다.
그러니 가장 확실하다 할 수 있는 '나'라는 자아와 물리적 현상을 연관 지을 수 있다면,
타자에게서 발생하는 비슷한 물리적 현상을 통해
인간에게는 자아가 있다는 간접적인 추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나'라는 기계가 꺼졌을 때 자아의 존재나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자아가 사라진 상태의 자신이 스스로를 인지할 방법이 없고,
그렇다고 타자의 시각에서 나에게 자아가 있는지 검증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본인뿐인데,
본인의 자아에 대한 물리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당연 인간의 자아에 다한 간접적 검증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자아에 대한 논의는 해당 부분을 건너뛰고
'타자에게도 즉 인간에게는 자아가 있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인간이란 샘플은 넘쳐나기 때문에, 이들 하드웨어적 특성을 바탕으로 자아를 규정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있다.
생물은 다양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곤충을 보면 인간과는 상이한 뇌를 갖고 있고
온몸에 퍼진 신경절이 뇌의 기능 상당부를 담당한다.
문어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지능을 갖고 있음에도 인간과 상이한 구조를 갖는다.
그러면 곤충이나 문어는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자아가 없다 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자아가 있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인간 기준으로 자아를 정의하고,
'다른 생물은 인간과 다르니 자아가 없다'라는 논리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행동을 통해 자아를 정의하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눈물을 흘리면 '슬프다', 웃으면 '즐겁다' 같은 감정,
이것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을 바탕으로 자아를 규정하고 검증하려는 것이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학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류의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고통을 느끼고 이를 회피하려 한다면, 감정이 있는 것이고 인간은 이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같은.
그런데 이 역시 논란은 없지 않다.
선을 긋기가 애매하다. 단적으로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생물을 찾기 힘들고,
또 그것이 단순 생존 전략인지 감정의 표현인지 어떻게 알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까.
그리고 이는 최근 AI 발전과 함께 치명적 문제를 맞닥뜨린다.
'사람인 척하는 기계' 즉 '자아가 있는 척하는 기계'를 어떻게 분간할 것인가.
실질 AI는 무엇보다 사람과 닮았지만,
앞서 말한 모든 논의에서 그 기준을 벗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 관련 논의도 활성화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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