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do
2030이 4050에게 "저는 쪼잔한 남성입니다" 본문
2030 남성들이 역차별을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남자가 쪼잔하게."
바로 4050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애초 논의 자체를 막아버리는 프레임.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는.
논의를 시작하려면, 2030이 이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말을 이을 수밖에.
"저는 쪼잔한 남성입니다. 하지만"
쪼잔하다는 말이 두려워서 말하기를 꺼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겁하고 바보 같은 행동일 테니.
또 이렇게라도 대화를 하지 않으면 4050은 절대로 2030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왜 4050이 2030을 이해할 수 없을까?
그건 세대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4050 남성은 성 불평등 속 남성으로서 특혜를 누려왔던 세대이다.
또 IMF 이전 풍족한 경제적 환경에서 사회활동을 해왔던 X 세대이기도 하고.
반면 2030은 완전 그 반대의 세대이다.
4050이 강요한 제도 아래에서 특혜는커녕 의무만 짊어지고 사는 세대.
사상 최악의 취업란에 치솟는 부동산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퇴로가 막힌 3포 세대.
당연히 4050이 2030을 이해한다는 건 완벽한 무리.
오히려 2030 여성이 남성을 이해한다면 이해를 했지.
성별은 달라도 같이 열악한 환경을 공유하는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심지어 스스로의 세대가 진 부채감을 은근슬쩍 2030에 떠넘기는 경우도 있으니.
특히 페미니스트 자처하며 타인에게 양보를 강요하던 정치인들, 하나같이 성범죄에 연루되는.
그렇다고 대화의 필요성을 말하면, 쪼잔하다 치부하고 심지어 일베라며 터부시 하는.
이것이 일베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인성의 문제였던 것일까.
하여튼, 최소한 대화의 통로는 막지 않기를 바란다.
"쪼잔함을 감수하더라도 이야기할 테니, 서로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여성과 남성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도.
물론 쪼잔함을 감수하더라도 끊임없이 어필하라는 것은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또 반대로, 서로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들어준다는 믿음이 없다면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든 도전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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